봉지야

1-집으로 가는 길

♡김리아♡ 2023. 5. 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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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에 창작한 글이다.

“톡톡. 톡톡톡.”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소낙비도 아니고, 보슬비도 아니고. 무슨 비가 이래!’ 
차가운 빗방울은 사방에서 흩뿌려져 머리 꼭대기에서 얼굴로, 그리고 어깨로 나려앉아 버렸다. 털과 피부를 타고 흐르면서 따뜻해진 빗방울은 몸 사이사이로 흘러나렸다.
 
‘으. 간지러워!’
몸을 좌우로 푸르르 흔들어 따뜻한 빗방울을 다시 차가운 세상 속으로 던져버렸다. 빗방울 털어내기를 몇 차례, 비는 이윽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 이놈의 흙! 자꾸 붙네!’
빗물과 뒤엉킨 흙이 발바닥에 붙어있었다. 손으로 발바닥에 있는 흙을 떼어냈지만, 반은 다시 바닥으로 반은 도로 손바닥과 털에 흉하게 붙어버렸다. 

‘으윽! 짜증 나!’
몇 차례 흙을 떼어내다 보니, 귀찮았던 비가 짜증스러워졌다.

‘그만 떼자! 그만 떼!’
아직 집까지는 더 걸어가야 하는데, 흙 떼기를 체념한 나의 발걸음과 손은 점점 무거워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좋았어!’
재빨리 엎드려 엉거주춤 네 발로 만들었다. 
 
‘아니야. 이러면 안 돼. 네 발로 기는 건 들짐승들이나 하는 짓이야.’
도리질하며 벌떡 일어섰다.
 
‘아니지! 지금은 위급상황이라고!’ 
다시 네 발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두 손을 앞으로 비비고, 두 발은 뒤로 비비고, 열심히 비비고 있던 그 순간,

“야, 너 뭐 하냐? 크크. 잘하는데? 오~!”
'이런 , 길냥이 아냐?’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일어섰다. 태연한 척 휘파람을 불려고 했지만 소리는 나지 않고 부질없이 침 몇 방울만 튈 뿐이었다.

 “네 발로 기는 건 너처럼 집도 없고 쓰레기나 주워 먹는 길냥이들이 하는 짓이라고 네가 어제 그런 거 같은데?”
 “그, 그랬나?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갑자기는 아닌 것 같은데?”
 길냥이는 콧등을 한껏 추켜올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네 발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왔다.

“가까이 오지 마! 길냥! 너! 너한테 구린나 나!”
 나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뒷걸음질 쳤다.

 “누가 개 코 아니랄까 봐. 그런데 구린나는 나 말고 너한테서 나는 것 같은데?”
 “킁킁킁.”
이런, 이 정체불명의 구린내, 흙과 함께 엉겨 붙은 쓰레기 냄새는 나한테서 나는 게 아닌가? 내 얼굴이 뜨거운 물에 잠긴 듯 아랫부분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얼굴 전체가 화끈거려 내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구. 구린내는 너. 너 코 속에서 나는 냄새거든!”
시뻘게진 얼굴을 들킬까 봐 길냥이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볼멘소리만 내질렀다.
 
“흡! 킁킁킁. 안 나는데?”
길냥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콧구멍까지 벌렁거리며 말했다. 
 
“안 나긴 뭐가 안나!”
나에게서 구린내가 난다고 인정할 수 없어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크크크. 안 미끄러지게 조심해! 잘 가! 헤헤헤.”
낄낄거리는 길냥이의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헥헥! 헥헥! 이제 나 안보이겠지? 아. 쟤는 왜 자꾸 만나는 거야.”
숨이 차서 잠시 쭈그리고 앉았더니 발이 보였다. 뒤엉킨 쓰레기와 진흙이 잔뜩 붙은 발. 

 ‘아. 엄마한테 혼나겠네.’
진흙 때문에 무거워진 발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무거워지는 듯했다.

“멍멍! 멍멍! 멍멍!”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구세요?”
 “엄마! 저예요!”
저벅저벅 걸어온 엄마는 문을 벌컥 여셨다. 새하얀 털이 살짝 덮인 까만 눈동자가 내 머리털 끝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훑어보기 시작했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너 꼴이 이게 뭐니?”
코 속으로 파고드는 흙냄새, 정체불명의 구린내,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쓰레기 냄새, 흙덩어리로 얼룩진 내 털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헤헤헤. 오다가 빗길에 미끄러진 것뿐이에요!”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은 듯 웃어넘기려 했지만 엄마의 굳은 표정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시는 엄마의 까만 눈동자가 내 꼬리 부분에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휘둥그레졌다.
 
“네 꼬리에 붙은 건 뭐니?”
 “네?”
 “네 꼬리 좀 봐 바!”
꼬리를 보려고 상체를 좌우로 비틀었건만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조금 더 과감하게 상체를 비틀어댔다.

 “으악!”
 갑자기 발꿈치가 미끄러져 몸이 공중부양 했다. 찰나지만 아플 몸을 걱정하여 팔다리를 허우적댔다. 그냥 떨어지는 것보다야 팔다리를 움직여주면, 그나마 덜 다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철퍼덕!”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둘기는 그대로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둘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줄줄 타고 내려간 흙탕물은 둘기를 잿빛인지 흙빛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바꿔놓았다.
 
“퉤 퉤 퉤! 야! 입 속에 흙탕물 들어갔잖아!”
가뜩이나 작은 눈을 더 작게 뜨며 둘기는 소리쳤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나를 나무라는 둘기가 괜히 얄미웠다.
 
“미안, 근데 너 원래 비 오는 날 흙탕물 먹잖아!”
눈썹을 추켜올리며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나 흙탕물 안 먹거든?”
 “비가 오면 흙탕물이 다리 아래로 줄줄줄 떨어지는 거 내가 다 봤거든? 그럼 다리 밑에 사는 비둘기들이 그 물을 먹을 수밖에 없지 않나?”
 “지금 너 다리 밑에서 산다고 나 무시하냐?”
둘기의 얼굴은 잿빛에 흙빛, 거기에 붉은빛까지 더해져 꿈에 나올까 무서울 지경에 이르렀다. 둘기를 보고 있던 눈은 흙이 덕지덕지 묻은 발로 향했고, 다리는 미세하게 흔들렸으며 갈 곳을 잃은 손가락들은 서로를 만지기에 바빴다. 
 
“아지야, 이런 얘들이랑 말 섞지 말랬지? 어서 들어와!”
성난 우리 엄마의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기쁨을 담은 건지 미안함의 담은 건지 알 수 없는 눈물방울이 눈가에 살짝 맺혔다. 재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내가 보이지 않도록 창문 밑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려 둘기의 뒷모습을 보았다. 흙빛으로 변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걷고 있는 둘기는 어딘가 모르게 처량해 보였다.
 

1 - 집으로 가는 길
1 -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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