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야

3 - 홍수

♡김리아♡ 2023. 6. 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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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아~~~.”
잠결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꿈이겠지.’
피곤한 탓인지 눈 뜨기가 귀찮았다. 축축한 느낌이 들었지만 조금 더 잠을 청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게 아닌가?
 
‘헉! 물이 흐르고 있다!’
눈을 번쩍 뜸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의를 의식한 순간, 입이 떡 벌어지고 눈은 커졌다.
 
‘헐. 이럴 수가!’  
사방이 온통 흙탕물로 둘러싸여 있는 것도 모자라 이웃집 지붕 꼭대기들만이 넘실대는 흙탕물 사이사이로 보이는 게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침대 위 지붕을 제외하고는 다 부서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방바닥으로 흙탕물이 곧 밀려들어 올 것 같았다. 
 
“끽. 끽.”
갑자기 집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침대가 물살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누가 좀 살려주세요! 살려줘요!”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끽끽. 끽끽끽.”


침대도 나처럼 무서운지 방바닥을 긁으며 울어댔다.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움직이는 침대 귀퉁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순간 저 무자비한 흙탕물이 나를 왈칵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흙탕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버렸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살려줘요! 살려줘! 제발!!!!”
아무리 외쳐도 사방에서 들리는 건 물소리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끽끽끽끽끽! 그그그그그그.”
방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침대가 버티지 못하고 물살에 휩쓸리더니, 이내 부서진 집으로부터 나와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안 돼!”
침대 귀퉁이를 움켜쥔 채 울부짖었다.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집이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손을 뻗어보려는 찰나 얼마 남지 않은 집마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집은 강물과 함께 섞여 자취를 감춰버렸다. 내가 태어난 곳, 엄마 아빠와 함께 생활하던 곳. 실망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엄마와 안쓰러움을 담고 계시던 아빠의 마지막 얼굴. 평온히 주무시고 계시던 부모님의 모습.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흐흐흑. 흐흐 흐흑. 흑흑흑.”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하더니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침대 귀퉁이를 꽉 잡았던 손마저 떨리면서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힘주어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손은 점점 더 떨릴 뿐이었다. 
 
“두두둑.”
손등 위로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손은 조금 전 보다 더 심하게 떨려왔다. 그사이 흙빛으로 물든 거친 강물이 침대에서 나를 떨어뜨릴 듯 말 듯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난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순간 흙빛 강물이 나를 덮쳐 버렸다.

“멍멍, 멍멍, 멍멍.”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구세요?”
 “엄마! 저예요!”
 벌컥 열린 문 안쪽에는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신 엄마가 서 계셨다. 그리고 따뜻한 손길로 내 손을 잡아 주셨다.
 
“아지야, 오늘 학교에서는 즐거웠니?”
 “네.”
 “우리 아지는 항상 단답형으로만 말하네. 에구!”
엄마는 나의 뺨을 어루만지다 콕! 찌르며 말씀하셨다.

 “맛있는 김밥 만들어 놨어. 씻고 와서 얼른 먹자.”
 “야호!”
환호성을 지르며 내방으로 부리나케 뛰어 올라갔다. 가방을 책상 옆에 내려놓고 옷을 벗으려는 찰나,
 
“야! 나 좀 빼줄래?”
낯선 목소리에 놀라 좌우를 살펴보았지만 별달리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야, 나 좀 빼달라고!”
여기저기 세심히 주위를 살펴봤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네 꼬리를 봐 바!”
꼬리를 보려고 상체를 좌우로 비틀었건만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조금 더 과감하게 상체를 비틀어댔다.

“으악!”
갑자기 발꿈치가 미끄러져 몸이 공중부양 했다. 찰나지만 아플 몸을 걱정하여 팔다리를 허우적댔다. 그냥 떨어지는 것보다야 팔다리를 움직여주면, 그나마 덜 다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꽈당!”
둔탁한 엉덩이 통증이 밀려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뭐. 뭐야? 왜 온통 하얀색이지?’
다시 눈을 감았다 떠도 여전히 세상은 하얀색뿐이었다.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놀랬거든? 나 좀 빼줄래?”
“너. 너. 누. 누구야?”
휘적휘적 팔을 휘둘러보아도 보이는 거라곤 새하얀 세상뿐이었다.
 
“네 머리에 내가 끼었다고! 네 털 때문에 간지러우니까 빨리 좀 빼!”
“뭐, 뭐?”
“빨리 좀 빼달라고!”
손으로 머리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미끌미끌한 감촉을 가진 무언가가 머리에 써져 있었다. 재빨리 낚아채 바닥에 던져버렸다.
 
“아야! 왜 내동댕이치는데? 폭력은 나쁜 거거든!”
하얗고 이상하게 생긴 물건이 버럭 화를 냈다.
 
“뭐야? 저게 말을 하네?”
“저게? 저게? ‘게’라니! ‘님’이라도 해도 모자랄 판에!” 
“그럼, 네가 물건이지 동물이냐? ‘님’이라고 부르게?”
“물건이라니! 물건이라니! 나는 비닐봉지님이시다!” 
그 물건은 공중에서 오르락내리락 요란하게 움직여댔다. 
 
“야! 진정 좀 해! 너 이름이 뭐라고?”
“비닐봉지!”
“뭔, 지?”
“비! 닐! 봉! 지!”
물건은 한 자 한 자 힘주어 소리를 내지르며 땅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아우. 귀 따가워. 비닐봉지? 난 처음 들어 보는데?"
“어휴. 무식하기는! 그냥 아주 간단히 표현하자면, 얇은 주머니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비닐봉지는 자신을 얇은 주머니라고 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주머니라고는 까끌까끌한 마른풀 줄기로 엮은, 옅은 황색을 띤 주머니가 다인데. 이렇게 말까지 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네가 주머니라고? 근데 어떻게 말을 해? 또 왜 이렇게 미끌거려? 그리고 왜 하얀색이야?”
비닐봉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며 질문을 퍼부었다.
 
“아휴 머리야. 한 가지씩 질문해. 그리고 좀, 떨어져 줄래? 왜 가까이 오고 그래?”
순간 비닐봉지가 너풀너풀 하늘로 올라가며 말을 이었다.
 
“야! 강아지! 나 잘 챙겨! 꼭!”
“야! 뭘 챙기라고? 너 어디가! 내 질문에 대답은 해야지!”
대답 없는 비닐봉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3 - 홍수
3 -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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