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야

4 - 길냥이와 둘기를 만나다

♡김리아♡ 2023. 6. 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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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미세하게 벌렁거리며 정신은 선명해지고 있었다.

‘풀냄새, 흙냄새, 물비린내, 흡흡. 이건 뭐. 뭐지? 흐~읍~!’
콧구멍을 최대한 벌려 더 많은 공기를 훅 들여 마셨다.
 
‘뭐야! 스. 쓰레기 냄새랑. 이건 똥. 똥냄새?!’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둥그런 물체 두 개가 시야에서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얘네들은 또 뭐야. 하아. 또 만난 거?’ 
길냥이와 둘기가 목을 길게 빼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 봐. 길냥아. 내가 그랬지? 내 똥 바르면 여지없이 깨어난다니까!”
둘기는 작은 부리로 내 이마의 털을 연신 잡아당기며 말했다.



“뭘 발랐다고?”
벌떡 일어나 앉았더니 길냥이와 둘기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도대체 네 똥을 어디에 바른 거야!!!”
둘기를 향해 빽 소리쳤다.
 
“네 이마! 그래서 네가 깨어났잖아!
둘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머리와 눈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굴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씻지? 어디서 씻지?’
다행스럽게도 가까이에 물웅덩이가 보였다.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가 이마까지 쑥 집어넣고는 양 손바닥으로 거칠게 똥을 씻어냈다. 


“킁킁. 킁킁킁.”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구린내는 더욱더 심해지는 게 아닌가? 
 
“야! 거기 내 전용 변소야. 으하하하하. 뭐 씻어도 딱히 상관은 없긴 한데. 아직 똥을 안 쌌거든!”
“으악!”
길냥이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무작정 털에 붙어있는 것들을 털어내려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더니 돌아오는 건 어지럼증뿐이었다.

“저기 저 쪽에 개울이 있어. 크크크크크.”
길냥이가 팔을 쭉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번개처럼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똥오줌 냄새는 제법 센 바람에도 거침없이 내 코 속을 헤집고 다녔다.
 
“웁!”
메슥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달리다 보니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이 보였다. 그대로 몸을 날려 풍덩 들어갔다.
 
“어푸! 어푸!”
얼른 머리털과 이마 털부터 박박 비벼댔다. 얼마나 세게 비벼댔는지 피부 깊숙한 곳까지 시원한 느낌이 들 무렵, 피부가 따끔따끔 아려오기 시작했다.
 
“킁킁킁. 흐~읍~! 흐~읍! 흐~읍!”
콧구멍을 최대한 벌려 심호흡을 했다. 다행히도 똥오줌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면서 위 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대며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웩!”
입에서 흙탕물이 왈칵 쏟아졌다. 빠르게 쏟아지는 흙탕물 때문에 숨 쉬기가 어려웠다. 전부 게워내니 속은 편해졌지만 입에서 흙냄새가 진동했다. 

“우웩. 누워 있을 때 배가 뽈록 하더니 흙탕물을 먹어서 그랬구먼?”

둘기와 길냥이가 홀쭉해진 내 배를 쳐다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너희들이랑 있는 거야?”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둘기와 길냥이를 쳐다봤다.

“딱 보면 알겠지만. 내가 눈이 아주 좋아. 내가 저 멀리서 날고 있었거든? 근데 강물 위로 뭔가 둥둥 떠다니는 거야. 꾀죄죄한 털이 눈에 익더라고. 단박에 너라는 걸 알았지. 그래서 길냥이가 저 깊은 강물에 번개처럼 뛰어들어서 널 건져냈어. 엄청나게 멋있는 행동이라고나 할까?”
둘기는 날개로 꼬리를 톡톡 쓸어 올리며 턱을 치켜들었다. 길냥이도 둘기에 질세라 턱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놀란 토끼처럼 시뻘게진 눈을 하고는 턱을 치켜든 모습들이 참 가관이었다.

 ‘뭐. 뭐야. 지금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거야? 하아.’
 이 상황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난감했다.
 
“야 너 왜 멍 때리고 있어? 고맙다고 안 해?”
둘기의 작은 눈은 바늘구멍만 해져 나를 쏘아보는 듯했고, 실룩대는 부리는 대답을 강요하는 듯했다.
 
“고. 고마워. 쿨럭.”
“정말 고마운 거 맞아?”
길냥이가 네 발로 다가와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으. 응. 진심이야. 고마워. 정말로.”
가까워지는 길냥이 얼굴에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꼬르르르륵.”
의도하지 않았지만 배에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고,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하. 고막 터지는 줄 알았다! 내 귀지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는걸? 하하하하하!”
 생글거리는 얼굴의 둘기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웃어댔다.

 “강아지가 그동안 굶어서 배가 많이 고픈가 보네. 아! 갑자기 나도 배고프네!”
 “나도!”
 “둘기야.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길냥이의 말에 둘기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오를 채비를 했고, 길냥이도 숲 속 어디론가 방향을 트려는 순간,

“저. 저기. 나도 같이 먹어도 될까?”
둘기와 길냥이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뒤돌아 봤다. 하늘을 찌를 듯 째진 길냥이의 눈과 보일 듯 말 듯 가늘어진 둘기의 눈을 맞닥뜨리기 어려워 시선은 땅에 머물러 있었다.
 
“어. 저. 저기.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래. 집으로 가는 방법도 모르고. 집까지 갈 힘도 없고. 쿨럭. 쿨럭.”
어느 순간 눈물 한 방울이 코끝을 타고 내려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콧등을 쓰윽 문질러 닦아낸 후 길냥이와 둘기를 처연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좋아. 같이 가자.”
길냥이와 둘기는 시선을 마주치는가 싶더니 가던 길을 재촉했다.

“저. 저기. 나 부축 좀 해주면 안 될까? 토하고, 배고프고. 그래서 좀 힘이 들어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길냥이와 둘기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길냥이와 둘기는 얼굴을 살짝 찡그린 채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길냥이가 어깨를 두른 후 천천히 일으켜 세워졌다. 다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간신히 설 수 있었다. 
 
“나는 부축 못하겠다앙! 나 너무 작아요!”
둘기가 작은 눈을 연신 깜빡이며 말했다.

“꼬리라도 들어!” 
길냥이가 눈을 흘기며 말하자마자 둘기도 눈을 흘기더니 내 꼬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고마워. 얘들아.”
“알면 됐어.”
둘기가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리고 우리는 천천히 숲 속 어딘가로 향했다.

 

 

길냥이와 둘기를 만나다
길냥이와 둘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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