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야

6 - 잠 못 이루는 밤

♡김리아♡ 2023. 6. 2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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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작은 잎들을 부리로 쪼아 대고 있는 둘기와 길고 넓적한 잎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길냥이가 보였다. 흙바닥 위에서 초록빛 풀잎들이 싱그러운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뭐해?”
 씻어놓은 그릇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어디, 설거지 얼마나 깨끗이 했나 볼까?”
반짝거리는 눈빛을 쏘아대며 길냥이가 물었다.
 
“깜짝이야! 너. 너 언제 내 옆에 와 있었어?”
“나는 번개보다 빠른 냥이! 번쩍! 번쩍!”
기다란 손톱을 바짝 세운 길냥이가 할퀴는 시늉을 연신 해댔다. 
 
‘아. 쟤 왜 이러니.’
한심하게 쳐다보는 내 눈빛이 느껴졌는지 길냥이가 내려놓은 그릇 하나를 들어 유심히 쳐다봤다.
 
“오! 처음부터 이렇게 잘하기 있기 없기!”
길냥이는 둘기 앞으로 그릇을 던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이야~. 앞으로 네가 설거지 전담해라!”
둘기가 나에게 그릇을 던지며 말했다.

‘진짜. 왜 저래. 누가 너네랑 산대냐! 아. 얼른 여기서 벗어나야겠다.’
어스름한 저녁 숲속은 나가는 길이 어디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만약. 혼자 길을 잃으면? 사나운 동물을 만난다면? 윽.’
생각하기도 싫었다.
 
“야. 왜 계속 두리번거려? 정신 사납게~.”
길냥이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우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어. 어! 그. 그릇 놓을 곳 찾느라. 하하.”
 “네 발 밑에 있잖아. 그냥 거기 둬!”    
둘기가 턱짓으로 내 발 밑을 가리켰다.
 
“응. 알았어. 근데 뭐하고 있었던 거야?”
“이부자리 만들었지!”
둘기가 푸드덕 날아올라 내 머리 위에서 자랑스레 대답했다.

‘저게 이부자리? 나뭇잎 조금 쌓아놓은 저게? 아. 등 베길 텐데.’

“너도 이리 와서 자.” 
길냥이가 이부자리 위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나도 누워볼까?”
둘기도 허공에서 벌렁 눕더니 그대로 이부자리 위로 착지했다. 
 
“고. 고마워.”
길냥이와 둘기의 배려에 한시름 놓았지만 못이기는 척 이부자리 가장자리로 슬그머니 들어가 누웠다. 엄마표 털 이불 보다야 덜했지만 나름 푹신하고 편안했다. 
 
“드르렁. 드르렁. 컥.”
금세 잠이 든 길냥이와 둘기의 코고는 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러 가지 일들로 피곤한 하루였음에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탓인지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 차 있었다. 별들을 이어보니 어느새 엄마, 아빠 얼굴이 되었다. 도대체 엄마, 아빠 잘 계시죠? 어디에 계세요?

숨이 막혔다. 반사적으로 눈을 떴을 땐 온통 하얀색 뿐 이었다! 

 

‘켁. 이게 뭐야!’
숨통이 트일 생각이 없었다.
 
“훙~. 훙~. 훙~.”
숨을 쉴 때 마다 무언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도대체 머리에 뭐가 씌어 있는 거야!'
머리를 만지자마자 손에 잡히는 것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또 나를 팽개칠 줄 알았지! 두 번은 안 당해!”
하얗고 이상한 물건이 재빠르게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중얼거렸다.
 
“아. 아니. 입도 없으면서 말을 하네?”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번에 그래도 ‘게’라고는 안하네. 다행이구만. 나 기억 안나?”
얼굴 앞에 뿅 나타난 그 물건이 말했다.
 
“헉. 뭐야! 언제 내려왔어? 저리가!”
두 손을 마구 휘저으며 도리질 쳤다.

“너 기억력 정말 꽝이구나? 나야 나. 비닐봉지.”
“비, 뭐?”
“비!닐!봉!지!”
“비닐봉지? 아! 저번에 나한테 내동댕이쳤다고 투덜대던 그 미끌미끌하고 이상한 주머니!”
“그래. 나 맞아. 이상하진 않지만 말이야. 흥! 그리고 주머니랑 비슷할 뿐이지, 주머니는 아니거든? 그냥 비닐봉지라고!”
부풀었다 쭈글어들었다를 반복하던 비닐봉지가 대답했다.
 
“지금 화내는 거야?”
“글쎄. 아지야.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을까?”
“나야 모르지! 너 기분까지 신경 쓰고 싶진 않은데?”
“당연히 신경 써야지. 내가 지난번에 나 잘 챙기라고 했을 텐데?”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한 비닐봉지가 삐죽였다.

‘뭐. 뭐야. 진짜 화났나? 왜 이래. 무섭게.’
 
“내. 내가 왜 널. 널 챙겨?”
“우린 앞으로 계속 함께 할 거거든!”
방금 전보다는 덜 빵빵해진 비닐봉지가 뱅글뱅글 돌더니 멈췄다.

“난 너랑 함께 할 생각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
“아니. 넌 나랑 꼭 함께 해야 해. 내가 널 선택했거든.”
비닐봉지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선택? 무슨 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얼른 나부터 구해줘! 지금 난 흙 속에 파묻혀 있다고!”
점점 쭈그러드는 비닐봉지가 소리쳤다.

“뭐? 흙 속에 파묻혀 있다고?”
“답답해! 빨리 꺼내줘!”
완전히 납작해진 비닐봉지가 지그재그를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너 내 눈앞에 있잖아!”
손을 뻗어 멀어지는 비닐봉지를 잡으려했지만 헛수고였다. 비닐봉지는 밑으로, 점점 더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에 파묻혀있다는 거야!!!!”
점점 작아지는 비닐봉지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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