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눈 따가워.’
듬성듬성한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 쬐고 있었다.
‘오늘은 집에 가 볼 수 있겠지!’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둘기와 길냥이를 천천히 내려다 봤다.
‘얘네 들이 친절하진 않았지만, 뭐 나도 예전에 못되게 굴었으니까……. 날 구해주고, 재워주고. 그동안 고마웠다! 잘 지내!’
따가운 햇살 때문에 파르르 떨리는 길냥이의 눈썹이 안쓰러워 작은 잎사귀 두 개를 집어 길냥이의 눈 위에 살포시 올려주었다. 잠꼬대를 하는지 계속 부리를 오물거리는 둘기의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용히 강가 쪽으로 가려는 순간,
“어디가?”
양손에 잎사귀를 든 길냥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응. 이제 집에 가봐야지.”
“집에? 우리랑 지내기로 한 거 아니야?”
“엄마, 아빠 찾아보려고.”
“그래?”
눈을 한껏 치켜 뜬 길냥이가 옆에 있는 둘기를 마구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야. 둘기야. 일어나 빨리.”
“아. 왜!”
일어날 생각이 없는 둘기는 날개를 연신 바닥에 내리치며 짜증을 냈다.
“강아지가 엄마 아빠 찾으러 집에 간데.”
“뭐? 뭐야. 너 우리랑 살기로 한 거 아냐? 설거지 전담 네가 맡았잖아! 그리고 네가 살던 동네 전부 다 부서졌어!”
벌떡 일어난 둘기가 멋쩍게 입꼬리를 내리며 대답했다.
“어. 나도 우리 집 부서진 건 봤어. 근데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부모님도 살아 계실 테니까……. 그러니까 찾으러 가야지.”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아른거려 목이 메여왔다.
“우리도 같이 갈래!”
길냥이와 둘기가 동시에 소리쳤다. 길냥이와 둘기도 서로를 처음 보는 양 마주보며 신기해했다.
“너희가 왜?”
“여기서 너희 집 가는 길 알아?”
“아니.”
“우리가 알려줄게.”
천진난만하게 웃는 둘기를 보며 마음 깊숙한 곳부터 조금씩, 조금씩 차오르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워. 정말로.”
“응.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길냥이가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자. 그럼 출발해 볼까?”
둘기가 푸드덕 날아오르며 내 머리 위에서 빙그르르 날갯짓을 해보였다.
“자, 출발!”
길냥이도 폴짝 뛰어 오르며 맞장구 쳤다.
숲속을 벗어나 강 상류를 향하고 있었다. 털끝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바람을 타고 저 뒤로 멀어져갔다. 앞서 가던 길냥이와 둘기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이러다 놓치겠네!’
마음이 급해져 팔을 빠르게 흔들며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할 무렵 저 끝에 서있는 길냥이와 둘기가 보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넸다.
“헥헥헥. 왜 안가고. 헥헥. 서 있어? 헥헥.”
“야, 너 왜 두 발로 뛰냐? 그래서 느리잖아!”
둘기의 단추 구멍만한 눈이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헥헥. 그럼. 헥헥. 두 발로 뛰지. 뭘로 뛰냐?”
“네 발로 뛰어야지! 너 발 네 개잖아! 하나! 둘! 셋! 네 개!”
“네 발? 난 손 두 개, 발 두 개라고! 결코 네 발로 뛰어 본적 없어!”
“그래? 그럼 난 계속 네 발로 뛸 거고 둘기도 날아갈 테니까. 알아서 쫒아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냥이는 네 발로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고, 길냥이와 눈빛을 교환한 둘기도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또다시 작이지는 길냥이와 둘기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한 오기가 생겼다.
‘절대 네 발로 안 뛸 거야! 절대!’
두 발로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에도 길냥이와 둘기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헉. 놓쳤다. 이제 어쩌지? 음. 음. 음.’
한숨 고르려고 바닥에 시선이 닿았을 때 제법 선명하게 찍혀있는 길냥이의 발자국이 보였다. 발자국을 따라 마지막 남아있는 힘까지 다해 달렸다. 헥헥 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왜 이렇게 먼 거야. 아 힘들어.’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비웃기라도 하듯 길냥이의 발자국은 저 멀리까지 찍혀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겠네. 아 그냥 확 네발로 뛰어갈까?’
집에서 네 발로 기거나 뛰었던 경험을 살린다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지만, 네발로 뛰려고 몸을 숙일 때 마다 엄마의 말씀이 맴돌았다.
‘네 발로 뛰면 들개야. 교양 없는 들짐승이 되고 싶니? 엄마를 실망시키지 마.’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어리석었던 마음을 떨쳐냈다. 털을 타고 흐르던 땀방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다시금 몸을 똑바로 세우고 달렸다. 침이 마르고 혀가 밖으로 쭈욱 나오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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