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의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은 교육 내용과 관련되어 이를 소유한 사회 계급에게 이득을 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문화적 지배가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 계급구조와 그 관계를 재생산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 어떻게 그 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는지 문화 자본, 사회 자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문화 자본
초등학교에서의 학업은 학교 교육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학습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 습관을 잘 기른 학생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 대부분 좋은 학업 성취도를 나타낸다. 그런데 과연 어떠한 학생들이 학업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를 문화 자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초등학교 교과서를 살펴보면 체험, 관찰, 견학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학생들은 구체적 조작기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수업 방식이 옳다. 그러나 학급 내에서 3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간접적인 활동을 통해 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직접 보고, 듣고, 만져서 학습하는 것의 이해도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교육과정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현장학습체험, 박물관 견학, 음악관 체험, 미술관 견학, 예술 및 체육 활동 등 문화자본이 풍부하면 교육내용이 더 익숙해진다. 따라서 문화자본이 부족한 아동보다 학업 성취가 높아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새는 돈이면 해결되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부르디외의 견해에 따르면 경제 자본은 문화자본으로 전환이 될 수 있다. 이로써 부모의 경제력의 척도에 따라 아동의 학업 성취가 변화된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 수업 중 가장 큰 성적 차이를 보이는 과목인 영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영어권 문화에 노출된 아이, 원어민과 접촉이 많은 아이, 학원에서 영어 수업을 받는 아이, 학교에서 30명과 같이 영어 수업을 일주일에 2시간 듣는 아이 중 누가 위 영어 성취가 가장 높을까? 학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노릇인데 참으로 부당한 세상인 것은 확실이다. 사실 정부에서도 이런 문화적 자본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다. 방과 후 활동,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문화 탐방 프로그램등이 있지만 문화적 자본의 격차를 줄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 사회 자본
사회 자본은 지속적인 네트워크 또는 상호 교류를 통해 생성된 관계 즉 사회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은 학연, 지연을 통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좋은 학교, 좋은 모임, 좋은 단체에 가입하기를 원한다. 여기서 좋은이란 사람들을 보다 사회의 상층부로 끌어올려줄 수 있는 기제를 말한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수 있을까? 교육체제의 서열이 노동시장의 서열을 강하게 결정하는 학력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을 통해 그 방법을 찾고자 한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높은 교육을 통해 상류층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사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위한 무한 경쟁으로 돌입한다. 부모와 학생의 요구,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교사는 성적 올리기와 좋은 대학 보내기에 많은 노력을 투자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경쟁조장의 교육, 교과서 지식 위주의 교육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여 조화로운 사회 만들기에 걸림돌이 된다. 이제는 좋은의 뜻을 바꾸는 교육을 해야 한다. 즉 상호신뢰와 공공의식,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자본 형성을 위한 교육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사회가 서로 연계하여 인성교육을 중점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인성교육의 세부 내용으로는 이웃 신뢰, 약속 지키기, 책임감 교육 등을 포함하는 도덕 교과서 내의 형식적인 교육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꾸준히 느끼고 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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